Chapter 5: 친필 증언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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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자 할머니가 내민 낡은 토지 위탁 계약서 원본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 1951년 피난 당시의 절박함과 희망을 생생하게 담고 있었다. 희미해진 글씨와 군용 인장은 70년의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 증서가 정말 남아있을 줄이야…”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할머니는 그 증서를 소중히 품에 안았다. “우리 영호의 마지막 부탁이었으니, 죽는 날까지 품고 살았지. 박창섭 그 양반이 고향에 돌아가자마자 우리한테 연락 한 통 없이 사라질 줄 누가 알았겠나.” 그녀의 목소리에는 깊은 한탄이 서려 있었다.

민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할머니, 혹시 당시 상황을 증언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희가 이 증서와 함께 할머니의 친필 증언을 받아 특별토지위원회에 제출하려 합니다.”

할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눈빛은 먼 과거를 응시하는 듯했다. “증언이라… 내가 이 늙은 몸으로 뭘 할 수 있을까마는, 영호의 마지막 유언인데 해야지.”

그녀는 이내 붓을 들고 한지 위에 또박또박 글씨를 써 내려갔다. 구부러진 허리에서도 느껴지는 강한 의지였다. 그녀의 손에서 70년 전의 비극이 다시 기록되고 있었다.

작은 식당 안, 국밥 냄새와 할머니의 오래된 기억들이 묘하게 뒤섞였다. 밖에서는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활기찬 뉴스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 또한 할머니의 고요한 증언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할머니는 긴 증언을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었다. 그리고 오래된 군용 인장을 조심스럽게 찍었다. 붉은 인주 자국이 누런 종이 위에 선명하게 새겨졌다.

“이것이 내 마지막 힘이 될지 모르겠구먼.” 할머니는 힘없이 웃었다. “이걸로 영호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렸으면 좋으련만.”

우리는 할머니께 깊이 감사드렸다. 그녀의 증언은 단순한 종이 한 장이 아니었다. 70년간 박창섭 아버지의 거대한 부를 지탱해왔던 거짓의 기반을 뒤흔들 결정적인 증거였다.

서울로 돌아와 우리는 즉시 강순자 할머니의 친필 증언과 토지 위탁 계약서 원본을 특별토지위원회에 추가 증거로 제출했다. 접수처 직원은 이번에는 아무 말 없이 서류를 받아들었다. 그의 표정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놀라움과 함께 미묘한 긴장감이 스쳤다.

며칠 뒤, 우리는 위원회로부터 공식 서한을 받았다. “박창섭 소유의 모든 부동산에 대한 즉각적인 역사적 진상조사에 착수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서한을 받아들고 떨리는 손으로 민규를 바라보았다. “민규야, 이제 시작이구나.”

“네, 형님. 이제 아버지는 더 이상 이 사실을 외면할 수 없을 겁니다.” 민규의 목소리는 비장했다.

하지만 동시에 불길한 예감 또한 엄습했다. 이 조사가 시작되면, 아버지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이미 ‘가문을 배신한 자’로 낙인찍힌 나에게 어떤 마녀사냥이 기다리고 있을지 두려웠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아침, 동네 이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민수 자네, 지금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건가? 박 노인께서 자네 때문에 쓰러지셨다고 하네. 당장 내려와서 사죄해야 해!” 이장님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침 일찍부터 집 문 앞에는 동네 주민 몇몇이 서성거렸다. 그들은 나를 힐끗거리며 수군거렸다. 그들의 시선은 경멸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이미 아버지는 친척들을 동원하여 나를 ‘패륜아’이자 ‘가문을 망하게 할 역적’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평화로운 일상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내 현실은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아버지는 공개적으로 나를 매장하려 하고 있었다. 이 마녀사냥 속에서 나는 과연 진실을 지켜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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